이인혜 에디터, 이종희 사진, 춘천문화매거진 <<pot>> 2023년 봄호 <우리는 매일매일> 중 이광택 인터뷰

 

 

보는 행위는 어떤 '끌림'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를 확 잡아 끄는 것에 시선은 묶이고 상상력은 개방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 감상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취향'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접근이 그렇게 단순한 취사선택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좋은 작품들은 제각기 고유의 빛을 품고 있고, 그것이 우리에게 반향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전공 수업보다 교양 수업에 기웃거리던 대학교 시절, 지금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모 작가 겸 강의자가 그랬다. '낯선 것에 대한 호의.' 우리가 호의를 가지고 시간을 들여 그것에 귀 기울일 때,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뜻 모를 감각을 전달해 준다. 작품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만나 공명하는 것. 미술 감상에 보다 본질적인 것은 취향이 아닌 작은 '호의'가 아닐까? 

 

 

개인적인 블로그 공간이라는 점으로 양해를 구하며 취향 고백을 하자면, 이광택 작가의 화풍이 나의 취향에 꼭 맞아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찬찬히 눈으로 찍고 있자면, 따스하다. 그리고 작가의 이야기와 작품이 담고 있는 시간이 궁금해진다. 아마도 그 어떤 허세도 느낄 수 없는 담담한 필치와 푸근한 질감 속에 그의 작품 세계가 어렴풋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완고하게 자리 잡은 대지와 그 위를 부드럽게 흐르는 물, 봄볕같이 따사로운 생명력. 그의 세계는 그가 평생을 바쳐 그려온 '춘천(春川)'을 닮았다. 그리고 작가의 세계가 수십 년에 걸친 치열한 삶의 전투 끝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다면, 감히 거기에 한낱 취향을 들이 대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가 춘천에서 어린 시절 봤던 뭉게구름 같은 안개, 가로등 불빛에 그림자가 엉켜있던 플라타너스 길, 공지천에서 바라봤던 중도 마을의 반짝임. 그 모든 풍경이 제 작품에 녹아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곡선이 많았던 춘천의 옛 골목들을 그릴 때에는 고향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았어요. 그럼에도 이 길을 가기로 했고 스스로와 약속했죠. 내 명함에 '화가'라는 직업 외에 다른 단어는 넣지 않겠다. 그 약속은 지금도 지키고 있어요. (......) 예술을 선택하면서 인생은 담보로 걸고 대신 다른 것에 의미를 두었어요. 육체는 사라져도 제 작품이 남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예술가로의 삶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요." 

"미술은 경쟁이 아니거든요. 순수하게 오로지 나의 정신 하나로만 예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개성을 지키고 싶었달까요."

 

"예술가의 생애는 매일이 절실한 전투거든요. (......) 나에게 일이란 '생명' 그 자체에요. 붓을 더 이상 잡지 못한다면 살아 있는 식물인간과 다를 게 없을 것 같아요.
"드로잉 연습을 위해 15년 간 매일 그림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대부분 일기에 첨가되는 그림이 되는데요. 그 이유는 화가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드로잉 실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죠."

 

"젊었을 때는 저도 '분노'라는 감정으로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현실의 비합리성, 정치 사회적 문제, 분단 현실 같은 시대의 영향을 받아 '분노'에 공감하고 그걸 작품에 활용했죠.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다른 감정들이 커지더라고요. 슬픔보다는 기쁨, 분노보다는 연민이요. 웃으면서 살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행복한 감정을 더 많이 가지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림에 긍정적인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어요. 세상이 제 그림으로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길, 힘든 사람들에겐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요."

 

 

<꽃향기 흐르는 날>, 2022, 캔버스에 유채, 61 x 73cm

 

<아늑한 귀갓길>, 2020, 캔버스에 유채, 61 x 73cm

 

<봄날 저녁의 귀갓길>, 2018, 캔버스에 유채

 

<마음 속 시골집>, 2020, 캔버스에 유채, 50 x 65cm
<메밀꽃 필 무렵을 읽고>, 2022, 캔버스에 유채, 112 x 162cm

 

<개나리꽃 핀 도시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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