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석호, 「강석호: 3분의 행복」, 강석호 작가 회고전, SeMA서소문관, 이은주 초청 큐레이터, 112.

2. 페터 바이벨,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 MMCA서울, 218.

3. Yann BAAC, 「소통의 다리」, L153아트컴퍼니, 작가 기획, 32.

4. 신선주, 박관우, 이연숙, 「검은 기둥의 감각」, 아트스페이스 호화, 고윤정 기획, 32.

5. 심규승, 박재성, 강수빈, 김준수, 최은지, 홍유영, 2023 별도의 기획전: 물질」과 세미나, 옥상팩토리, 이주연 기획, 312.

6. 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SeMA서소문관, 57.

7. 카라바조 50,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국립중앙박물관, 67.

8. 하이디 부허,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아트선재센터, 김선정, 문지윤 기, 618.

9. 단체전,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MMCA서울, 74.

10. 서용선, 「내 이름은 빨강」, 아트선재센터, 729.

 

11. 단체전,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아트선재센터, 7월 29일.

12. 김환기, 「한 점 하늘: 김환기」, 김환기 회고전, 호암미술관, 8월 25일.

13. 김구림, 「김구림」, MMCA서울, 8월 27일.

14. 김민지, 성필하, 신민, 오세경, 이한나, 「물의 나라에서」,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 정현경 기획자, 9월 7일.

15. 최상흠, 「가설 건축물」, 스페이스 캔 & 오래된 집, 9월 15일.

16. 권다예, 「CHROMARIUM」, 챔버1965, 오상은 기획자, 9월 15일.

17. 우수빈, 「WINTER JUNGLE」, 안팎스페이스, 장순원 기획자, 9월 15일.

18. 피카소, 「피카소 도예전」, MMCA 청주, 소장품전, 10월 13일.

19. 단체전, 「디지털 스토리: 이야기가 필요해」, MMCA 청주, 10월 13일.

20. 단체전, 「건축, 미술이 되다」, 청주시립미술관, 10월 13일.

 

21. 단체전, 「사물의 지도」,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1014.
22.
김기창, 「운보미술관 상설전」, 운보미술관, 1014.
23.
정연두, 「백년 여행기」, MMCA 서울, 1023.
24.
갈라 포라스-, 전소정, 이강승, 권병준, 2023 올해의 작가상」, MMCA 서울, 1023.
25.
김유정 문학촌 기념전시관, 1024.
26.
류민지, 한황수, 「시선유희」, 스페이스 윌링앤달링, 1027.
27.
이강소, 「바람이 분다: 조각에 관하여」, 리안갤러리 서울, 1027.
28.
국립춘천박물관, 상설전시장 & 「창령사 터 오백나한: 나에게로 가는 길」, 1031.

29. 국립춘천박물관, 「오대산 월정사: , 산 속에서 피어난 이야기」, 1031.

30. 이재복, 「찬란한 순간」, 개나리미술관, 1031.

 

31. 유근택, 「반영」, 갤러리현대, 113.

32. 정다정 & 함진, 「정다정 X 함진」, 프로젝트 스페이스(PS) 사루비아, 2023 Studio Project 3: 큐레이터 기획전, 113.

33. 단체전, 春川: 바람, 햇빛, 강물 그리고 사람」,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 117.

34. 단체전, 「화로」, 강원대학스포센터 전시장, 117.

35. 키얀 윌리(Kiyan Williams), 「별빛과 진사이」, 페레스프로젝트, 1110.

36. 파올로 바도르(Paolo Salvador), 「천에 새겨진 미스터리」, 페레스프로젝트, 1110.

37. 단체전, 「아니, , 아트스페이스 보안(보안여관), 강영희 기, 1110.

38. 서울공예박물관, 「자수, 이 피다」, 「보자기, 일상을 감다」, 상설전시, 1112.

39. 단체전, 「공예 다이로그」, 서울공예박물관, 별기획전, 1112.

40. 이승권, 「치르치르의 파랑새, weksa, 1126.

 

41. 김진선, 「공의 실」, COSO, 1126.
42.
이현우, Drivers High, 별관, 123.
43.
수민, A Good Knight, 정지구, 127.
44.
단체전, 「서예술실험센터 장래(場來式), 예술실험센터, 127.
45.
단체전, 「희미하게 러 아빛나는」, 대안공간 루프, 127.
46. <WESS
전시2023>, 나선도서관, 1210.
47.
김소라, 「파: 소라에게」, 별관, 1217.
48.
단체전, 절의 사이비집고 어가」,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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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가 읽기는 재미 없어도 보기엔 일목요연해서 좋은 듯하다.

 

2023년 많이 보려고 했다. 많이 보려다 보니 또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특히 춘천을 오갔던 기억이 생생하고, 첫 전시인 '강석호' 전은 작년에 본 것마냥 아득하다.

그래도 그 이름을 읽음과 동시에 모든 전시의 전경이 눈 앞에 그려지니 허투루 보진 않은 모양이다.

좋았던 전시도 있었고, 그닥 즐기지 못했던 전시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재밌게 보지 않았던 전시들도 나름의 것들을 가르쳐줬기 때문에,

결국 가서 보는 게 가장 좋은 공부인가 싶다.

 

눈과 발이 바빴던 한 해를 보내서 뿌듯했고,

쪼개어 썼던 시간이 나름의 결실로 드러나게 되어서 보람찼고,

최소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돼버린 사람'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아무튼 좋았다.

 

 

그때, 그곳, 그것이 남긴 사진

- 이승권 개인전, <치르치르의 파랑새>, 웩사(weksa), 2023. 11. 12 ~ 11. 26.

 

 

 

 

 

 

    작업 배경에 대한 설명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히말라야 여행담으로 흘러갔다. 히말라야산맥을 보며 느꼈던 경외감은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거나 간과했을, 혹은 기억이라면 서서히 잊혀져갔을 '희미한 존재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때, 그곳, 그것'이라고 돌려서 지칭할 수밖에 없는 무명의 것들. 그러나 분명 그날, 그 장소, 그 시간에 있었기에 기억에 남았고 어쩌면 우리 삶을 이루고 있을 명징한 편린들. 작가는 스스로 사진에 담길 상황과 동화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때에, 그곳에, 그것에 충분히 녹아들었을 때 셔터는 눌러진다. 이는 각각의 편린을 그 순간의 맥락에서 도려내지 않고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전체로서 담아내려는 작가의 비폭력적 촬영의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이승권의 사진에서는 피사체가 보이기보다는 그때, 그곳, 그것이 먼저 느껴진다. '그때, 그곳, 그것이 남겨놓은 흔적'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이는 그의 사진은 그때의 공기, 그곳의 빛깔, 그것의 숨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전시전경

 

 

 

전시전경

 

 

 

전시전경

 

 

전시전경

 

 

 

짙눈깨비, 2023, 100x140.

 

 

 

밤으로의 긴 여로, 2022, 100x140.

 

 

 

안녕 선우일란, 2023, 50x70.

 

 

 

(왼쪽부터) 숨이 가득 찬 방, 2022, 12x17. / 2시 지나서, 2022, 12x17.

 

 

 

조약돌의 조약돌의 조약돌, 2023.

 

 

 

 

 

 

 

 

 

 

 

 

 

 

 

 

 

* 맨처음의 전시장 입구 사진과 아래에서 두 번째 작품 사진을 제외한 모든 사진은 weksa의 웹사이트 https://weksa.co.kr/에서 가져왔음.

 

하나와 다른 하나, 그 사이에 손끝

- <아니말, 그들이 왕이었을 때>, 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 2023. 10. 20 ~ 11. 12.

 

 

은혜의 새 #3, 2023, 266x200cm, 텐트천에 라텍스 프린트. Copyright 2023 Eun Chun.

 

 

 

저는 트래비스를 게처럼 걷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 저는 서투르게, 옆으로 또 뒤로 걷는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그건 당신이 게를 흉내 내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미지가 당신에게 협업해야 할 무언가를 주는 것이죠. 그건 당신이 다른 종류의 행동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어떤 사람이 갈라진 나무줄기 사이에 쪼그려 앉아 있다. 마치 한 마리의 새와 같은 자태로. 자신을 찍는 사진가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날아갈 태세이다. 전명은은 새를 닮은 사람과 그가 숨겨놓은 또 다른 새를 찍어 놓은 모양이다.** 그 새의 이름은 권은혜이다. 권은혜는 배우이기도 하다. 권은혜는 새를 연기한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에 따르면, 배우의 연기란 그 대상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대상이 모두 스스로의 규정으로부터 나와 새로운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행위이다. 그러니까 사진에 담긴 '청록색의 은혜-(Turquoisebird)'는 더 이상 권은혜도, 그 어떤 새도 아니다. 차라리 다른 것이 되는 중인 새 혹은 권은혜이다.

 

 

 

최근 조각가에 관한 작업을 하면서, 감각의 끝이 닿는 곳에 있는 건 살아있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진가의 기관은 눈이 아니라 손가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셔터를 누르는 순간마다 사진가의 손가락은 곧바로 또 다른 순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게 아닐까?***

 

 


    전명은의 사진이 어떤 독특한 지점을 포착하고 있다면, 그곳은 하나와 다른 하나의 사이지점일 것이다. 그 지점은 권은혜와 새처럼 다른 두 개체 사이가 될 수도 있지만, 하나의 조각, 식물, 겨울이라는 계절을 이루고 있는 시간의 면과 면 사이로 나타나기도 한다. 결코 눈에 현상되지 않는 중간점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해 전명은은 그렇게도 오랜 시간을 들여,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피사체의 삶과 접촉하는 것이다.

 

 

 

 

은혜의 새 #4, 2023, 100x75cm,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은혜의 새 #1, 2023, 80x60cm,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가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자신이 분한 트래비스 비클의 극중 행 동 방식을 고민하면서 했던 인터뷰. [성기현. (2017). 「들뢰즈의 감각론 연구」. 철학박사학위논문. 서 울: 서울대학교 대학원. p. 106]에서 재인용.

 

** 20231020일부터 1112일까지 보안1942’에서 열린 <아니말, 그들이 왕이었을 때> 전에 작 품 소개글로 전시된 전명은의 작가노트에서 발췌.

 

*** 전명은, <작가노트>, 2018, http://chuneun.com/?page_id=1143

 

 

Un/earthing*

- 키얀 윌리엄스 개인전 <별빛과 진흙사이>, 페레스프로젝트, 2023. 9. 7 ~ 11. 12.

 

 

 

 

 

 

이 모든 활동에서 나는 내가 거주하고 물려받은 세계를 증언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전통과 역사를 구축하기 위해 비천한 재료인 흙, 건축 잔해, 곰팡이와 협력하여 그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듣거나, 문서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삶을 듣고 발굴합니다.




별빛과 진흙사이, 2022,&nbsp;earth, sandstone, wire, hardware 120 x 96 x 96 inches

 

 

    땅을 파고, 파고, 또 파낸다. 그렇게 파헤쳐진 흙은 낯선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흑인 동산노예(chattel)의 이주와 이름 없는 죽음, 증조모가 남긴 생애의 흔적. 그 자체로 흑인 디아스포라아프로-아메리카의 역사를 품은 대지의 부스러기는 키얀 윌리엄스(Kiyan Williams, 1991~)에게 발굴되어 새로운 기념비의 재료로 사용된다.** 작가에게 흙은 단순한 재료를 넘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은유하는 상징이다. 그러니까 땅을 파내고 흙을 수집하는 반복적 행위는 은폐되고 유기되었던 자신의 근거를 탐색하고 그곳에 뿌리내리기 위한 욕망의 발로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접지(earthing)의 행위는 영구적인 정착이나 고착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다른 무언가가 되기 위한역사적 양분을 획득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에게 뿌리내림은 익명으로 사라져간 자신의 선조와 이웃을 감각하고, 그들과 하나로 얽혀있음을 느끼는 인식의 과정인 것이며, 흙으로 해체된 그들과 함께 새로운 형상을 빚어내기 위함인 것이다.

 

 

 

 

 

 

 

 

 

* 'Un/earthing'은 2022년 뉴욕 라일즈앤킹(Lyles and King)에서 열렸던 작가의 개인전 <Un/earthing>에서 차용했다. 또한 Unearthing2016년 뉴욕 딕슨플레이스(Dixon Place)에서 진행했던 작가의 첫 퍼포먼스 작품의 이름이기도 하다. earthing접지’, ‘정착등을 뜻한다면, unearthing파내기’, ‘발굴하기처럼 땅에서 분리되는 행위를 의미할 것이다.

 

** 작가는 과거 아프리카 노예들의 묘지였으나, 현재는 공원으로 이용되는 집 근처 공터에서 흙과 식물을 수집하여 <Unearthing>(2016)에 사용하였고, 흑인 노예들이 미국으로 처음 이주했던 장소 중에 한 곳인 버지니아주 리치몬드(Richmond, Virginia)의 포와탄(Powhatan) 강변에서 채집한 흙을 가지고 그곳에 <Reaching Towards Warmer Suns>(2022)를 만들어 심었다. 또한 작가는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증조모의 옛 집터를 찾아가 흙을 채집하고, 그것을 <Meditation on the Making of America>(2019)에 활용하였다.

 

*** 작가 홈페이지 https://www.kiyanwilliams.com/

전시 리뷰라기 보다는 간단한 후기입니다.

 

 

관계의 풍경

- 갤러리현대, 유근택 개인전 <반영>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조건들 속에서의 나의 ‘호흡,’ 나의 ‘태도’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삶과 마주하고 있는 나의 몸과 체계를 드러내는 하나의 관점이 된다. 이 때의 내가 부딪히는 사물들, 즉 장난감들의 광경이나 전화박스, 나의 생활공간, 분수, 그리고 앞산 연구 등 이러한 일상적인 대상들이 때로는 너무도 낯설게, 혹은 신비스러운 힘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러한 ‘낯설음’이란 것은 내게 있어서 사물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그림에 접근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는데, 그것은 간혹 내 삶의 위치를 환기시켜주는 하나의 장치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드로잉 작업 중인 작가, 'MMCA 작가와의 대화: 유근택 작가'에서 장면 캡쳐**

 

 

 

      한지에 스며든 물감은 면을 이루고 그 위로 쌓이는 호분(胡粉)은 깊이를 만든다. 그렇게 세워진 시공 안에서 유근택(1965~)은 호흡한다. 들숨과 날숨. 이웃한 사물의 숨결을 들이키고, 자신을 내뱉는 과정. 한지는 작가가 일상과 관계를 맺는 접점이자 실존의 장이다. 한지 위에 펼쳐지는 것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나와 너의 풍경’이다. 그의 <자화상>들에서 그 자신의 온전함이 아닌 풍경에 물들어 가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지 위에 반쯤 뭉개지거나 흐무러진 그는 새로운 풍경이 ‘된다.’*** 2015년부터 시작된 그의 철솔질 역시 한지의 물성을 드러내어 자신과 풍경 모두를 지우고, 관계가 그리는 제 3의 풍경을 표현하기 위한 지난한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유근택은 언제나 자신과 일상, 나와 너의 경계에 서고자 한다. 때때로 그는 노란 풍경 안에 우뚝 선 얼굴 없는 사람으로, 또 떨어짐과 올라감을 반복하는 수직의 분수로 분하여 실존적 고뇌를 지속하며 관계의 풍경을 그려낸다.

 

 

 

 

반영, 2023,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144 X 101cm.

 

 

 

분수, 2023,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145 X 103cm.

 

 

 

(순서대로) 자화상, 2023, ink, white powder and gouache on paper, 35 X 25.5cm / 자화상, 2015,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89 X 89cm.

 

 

 

이사, 2018,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205 X 220cm와 세부 컷.

 

 

 

말하는 정원, 2019,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146 X 203cm.

 

 

 

말하는 정원, 2018,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146 X 161cm.

 

 

 

봄-세상의 시작, 2023,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250 X 206cm와 세부 컷.

 

 

 

1층 전시전경

 

 

2층 전시전경

 

 

지하 전시전경

 

 

 

 

 

 

* 갤러리현대, https://www.galleryhyundai.com/artist/view/20000000077, 2023.11.06일 접속

** https://www.youtube.com/watch?v=JKF1BfLAOkk, 14분 29초.

 

*** ‘~이 되다’는 질 들뢰즈의 ‘devenir’ 개념을 지시한다. 해당 개념은 ‘되기’ 내지 ‘생성’으로 번역되는데, ‘되기’는 나와 네가 모두 자신의 정해진 규정에서 빠져나와 ‘제 3의 장소’에서 만남으로써 둘 모두가 이전과 다르게 생성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것이 ‘되기’ 위해서 먼저 타자와의 ‘관계’가 전제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퀴어 역사쓰기: 현상학적 조명의 방식

- MMCA <올해의 작가상 2023> 중 'who will care for our caretakers: 누가 우리를 돌보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

 

 

 

무제(CARE), 2023, 네온, 65 X 95cm

 

 

궁극적으로 내 작업은 유산의 힘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한 것으로 어떠한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묻혀있던 것을 조명하고 그 존재를 밝히는 일이 역사가의 소임이라면, 같은 이유에서 이강승은 역사가와 같다. 그는 ‘괴상한(queer)’ 이야기를 재조명한다. 괴상하게도 쉽게 잊혀 졌고, 존중받지 못했던 그들을 재소환하여 무대에 올리는 이강승의 작업은 ‘그들이 그곳에 있었노라’ 선언하며 역사의 재편, 혹은 새로운 역사쓰기를 기도한다. 다만, 그가 선언하는 방식은 여타의 것들과 달리 명령조라기보다 차라리 간곡하다. 그들의 이야기에 오히려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이다. 네온과 금실, 흑연으로 삼베 위에 쓰인 역사는 아스라이 사라졌던 그들의 이야기만큼이나 위태롭고도 찬란하게 그들의 존재를 ‘지금 여기’에 드러낸다. 거대한 기념비로 세워진 드랙퀸들의 벽화, 오준수(1964-1998)와 데릭 저먼(Derek Jarman, 1942-1994)의 이야기, 고추산(Goh Choo San, 1948-1987)의 유산 등은 작가의 직조 아래 한데 엮이며 스스로가 ‘존재했음’을 공표하고, 마틴 웡(Martin Wong, 1946-1999)의 수화언어로부터 차용된 상징들은 손을 치켜들어 그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선언하는 듯하다. 분명 그와 같은 지지와 연대는 너무나 섬세하고 연약하기에 또 다시 기억의 심연 속으로 사그라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강승이 보살펴 마련한 그들의 자리는 지금 여기에 남을 것이며, 끊임없이 그들의 ‘현존’을 지시할 것이다. 비어있기(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시될 수 있는 그들의 존재는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 내 삶의 반경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기에 불편할 수 있는 진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죽어 사라진 그들의 유산을 보살피고, 현존하는 그들의 존재를 돌보는 보다 적극적인 이해의 시도는 '그들'이 '우리'가 될 그 언젠가의 미래로 향한다.

 

 

 

 

 

 

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 2022, 삼베에 엔틱 24k 금실, 호두나무 액자, 약 38 X 57cm

 

 

 

라자로(정다은, 네이슨 머큐리 킴과의 협업), 2023, 단채널 4K 비디오, 7분 52초 중 일부 장면

 

 

<Garden> 프로젝트의 일부

 

 

 

무제(오준수의 편지), 2018, 종이에 흑연, 160 X 120cm

 

 

 

무제(너의 데님 셔츠), 2023, 양가죽 양피지에 흑연, 수채, 엔틱 24k 금실, 삼베, 진주, 약 76 X 111cm

 

 

 

전시 전경

 

 

 

 

 

 

 

 

* 갤러리현대 웹사이트, 'Kang Seung Lee 이강승: Plus magazine', 2022.06.25., https://www.galleryhyundai.com/story/view/20000000217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전의 전시 모습

 

하이디 부허(Heidi Bucher, 1926~1993)의 아시아 첫 회고전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전이 6월 25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됐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하이디 부허가 작고한 다음 개최된 작가의 회고전 및 개인전은 2004년 취리히 미그로스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하이디 부허: 자개(Heidi Bucher: Mother of Pearl)>전시를 시작으로 2022년까지 20번 가량의 크고 작은 전시가 진행되었고, 이번 전시를 제외한 마지막 회고전은 2021년 독일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서 시작해서 2022년 스위스 쿤스트뮤지엄 베른과 스위스 수쉬 미술관을 순회한 <변신(Metamorphoses)>전이다. 이처럼 작가는 2000년대 이후에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하이디 부허 재단(The Estate of Heidi Bucher)의 운영자이자 그녀의 아들인 메이요 부허(Mayo Bucher)는 "과거 유럽은 쇼비니즘과 남성주의적 시선에 빠져 있었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고 앞으로 계속 바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하이디 부허의 작품이 재발견된 건 여러분 덕분"이라고 평했다.*

 

 

 

Heidi Bucher, portrait-studio. ⓒ The Estate of Heidi Bucher. 마크 로스코 계열의 색면추상회화와 바우하우스의 교수이기도 했던 파울 클레의 사진이 눈에 띈다.

 

 

1.

이번 전시에는 1940~50년대의 초기 작품부터 80년대 후반 말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총 13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었고, 조각과 설치, 드로잉, 실크 콜라주, 영상, 다큐멘터리 등이 전시됐다. 퍼포먼스나 작품 제작의 기록용으로 활용한 영상과 다큐멘터리를 제외한다면 하이디 부허가 다룬 주요 매체는 조각과 설치, 드로잉, 그리고 실크 콜라주라고 할 수 있겠다. 연대순으로 따져보면 40~50년대에는 실크 콜라주드로잉 작업이 주를 이룬다. 이는 작가가 1944년부터 1947년까지 취리히 미술공예학교에서 패션과 섬유를 전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작품을 보면 옷을 제작하기보다는 색채 실험, 직물 콜라주 등 조형적이고 매체적인 실험 작업을 지속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그녀와 활발히 교류했던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녀를 취리히 학교에서 가르쳤던 사람은 다다이스트 였던 소피 테우버-아르프(마찬가지로 다다이스트인 한스 아르프[Hans Arp, 1887~1966]의 아내이기도 하다)의 제자인 엘시 지오크였고, 무엇보다 전 바우하우스의 교수였던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 1888~1967)이 당시 취리히 미술공예학교의 교장이었기 때문에 그의 색채 이론과 커리큘럼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작가는 다다이즘의 전문가이자 컬렉터였던 한스 볼리제와 절친한 관계였다고도 한다.

 

 

<Study>, 1945, Watercolour and pencil on paper, 21 x 30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Silk collage>, 1956, Collage on cardboard, 28 x 18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Silk collage>, 1957, Collage on cardboard, 50 x 34.5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Untitled>, 1959, Textile, Collage on cardboard, 31.5 x 44.5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Untitled>, 1959, Oil on cardboard, 30 x 40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2.

70년대로 들어서면서 하이디 부허는 '바디랩핑(Body Wrappings)''바디쉘(Bodyshells)' 그리고 '소프트 오브젝트(Soft Objects)' 작품을 제작하며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계열의 작업을 시작한다. 이는 미국 거주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그녀는 남편이자 현대 미술 작가였던 칼 부허와 두 아들과 함께 7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게된다. 거기서 그녀는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1939- )가 미리엄 샤피로와 함께 제작한 기념비적 설치 작업인 <여성의 집(Womanhouse)>(1972)을 관람하는 등 여성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드러운 스티로폼으로 신체를 둘러싸는 '바디랩핑' 작업이나 보다 완전한 수트 혹은 갑옷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바디쉘' 작업은 마치 곤충의 외피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고, 이는 자신의 몸을 둘러싼 보호막이자 해방을 위해 벗어던지고 나아가야 할 껍데기라는 은유를 지닌다. 특히 바디쉘 작업은 칼 부허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Landings to Wear'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협업은 칼의 'Landings' 조각을 바디수트로 활용하는 '입을 수 있는 조각(wearable sculptures)' 작업이었다. 1973년 취리히로 돌아오면서 하이디 부허는 부부로서의 가치관 차이로 칼과 이혼하게 된다. 그녀는 부허라는 성은 유지하지만 예술가로서 독자적인 길을 걷기 위해 칼과 거리를 두게 된다. 취리히로 돌아온 다음 그녀는 오래된 정육점을 빌려 작업실로 사용한다. 그리고 작업실 중앙에 있던 냉동창고를 'Borg'라 이름하는데, 독일어로 'Ge-Borg-enheit'는 '안전'을 뜻한다고 한다. 누군가의 아내 혹은 엄마로서가 아닌 한 명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후 'Borg'는 1976년 그녀의 첫  '스키닝(skinnings)' 작업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Borg에서 작가는 '소프트 오브젝트' 작업을 시작한다. 앞치마, 스타킹, 속옷 등 여성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액상 라텍스에 담근 후 방부처리하여 부드러운 조각을 만들어냈다. 라텍스에 절여진 오브제들은 본래의 용도와 색조를 잃게 되며 마치 곤충의 허물과 같은 형상을 지니게 된다. 변태(metamorphosis)를 마친 그녀가 빠져나간 듯 허물어진 오브제들은 중성화되어 영원한 기념비로 남는다.

 

 

(오른쪽 두 개의 이미지) <Untitled>, 1971, Felt pen on paper, 30x21cm, 35x21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Bodyshells>, 1972, LACMA, Los Angeles ⓒ The Estate of Heidi Bucher.

 

<Bodyshells>, 2021, Haus der Kunst, Munich ⓒ The Estate of Heidi Bucher.

 

<Landings to wear>, 1970, New York with Carl Bucher ⓒ The Estate of Heidi Bucher.

 

Studio, Zurich, 1976 ⓒ The Estate of Heidi Bucher.

 

<Apron>, 1974, Textile, Latex, Paint, Mother-of-pearl pigment on foam, 150 x 119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Der Fisch Schl&auml;ft>, 1975, Textile, Latex, Paint, Mother-of-pearl pigments, 215 x 80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Anna Mannheimer with Target>, 1975, Textile, Latex, Paint, Mother-of-pearl pigments, 213 x 200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Blaues Kleidchen>, 1978, 90 x 64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Strumpfrock>, 1978, 96 x 43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Libellenlust,Dragonfly Costume>, 1976, Textile, Foam, Latex, Mother-of-pearl pigments, Exhibition view Hauser, Wirth & Schimmel L.A. 2016 ⓒ The Estate of Heidi Bucher.

 

Heidi Bucher performing in her Dragonfly Costume, 1976, Zurich, Photo by Thomas Burla ⓒ The Estate of Heidi Bucher.

 

 

3.

작가는 70년대 후반부터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업인 '스키닝(skinnings)'을 시작한다. 스키닝은 벽에 부레풀을 거즈와 함께 바르고 액상 라텍스를 덮어 말린 뒤 벗겨내는 기법이다.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서재, 정신 의학자 빈스방거의 진료실 등을 방문하여 그곳의 피부를 벗겨낸다. 그곳에 쌓여있던 억압적 이념과 차별적 관습의 때를 벗겨내는 것이다. 피부는 몸과 외부가 교류하는 1차적인 장소이다. 우리는 피부를 통해 사회를 감각하고 시대를 경험한다. 시간이 흐르고 삶이 지남에 따라 피부 위에는 겹겹의 지층이 쌓인다. 하이디 부허는 특정 장소의 피부를 벗겨내며 그곳에 쌓여온 시간과 역사를 벗겨낸다. 억압적 때가 벗겨진 공간은 중성화되며 작가는 그 피부를 전리품으로 챙긴다.

 

 

Abl&ouml;sen der Haut I - Herrenzimmer(아버지 서재), 1979, Photo by Hans Peter Siffert ⓒ The Estate of Heidi Bucher.

 

<Herrenzimmer>(아버지 서재), 1979, Textile, Latex, Mother-of-pearl pigments, Exhibition view Swiss Institute New York, 2014 ⓒ The Estate of Heidi Bucher.

 

<Der Parkettboden des Herrenzimmer> (아버지 서재), 1979, Exhibition view, Swiss Institut CCS, 2013, Paris ⓒ The Estate of Heidi Bucher.

 

<The Parlour Office of Doctor Binswanger> (빙스방거의 진료실), 1988, Textile and Latex, 500 x 500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Das kleine Glasportal mit 3 B&ouml;gen>, 1988, Textile and Latex, 340 x 455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Das kleine Glasportal mit 3 B&ouml;gen>, 1988, Textile and Latex, 340 x 455cm, Migrosmuseum, Zurich 2004 ⓒ The Estate of Heidi Bucher.

 

<Untitled>, 1991, December Postcard collage, 16.7 x 14.8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4.

말년에 이르러서 하이디 부허는 흘러넘치는 생명력과 끊임없는 변화의 상징으로 물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그녀는 생애를 가로지르며 물과 같이 흐르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보다 경쾌하게 흐르기 위해선 가벼워져야 하고, 가벼워지기 위해선 자신에게 무겁게 붙어 있는 무언가를 벗겨내야 한다. '생성을 위한 분리', '벗겨내고 벗어남'은 그녀가 가볍게 흐르기 위한 탈피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녀를 소개하는 글에는 항상 '아방가르드'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아방가르드의 수호자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는 "아방가르드의 가장 참되고도 가장 중요한 기능은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 혼란과 폭력의 한가운데에서도 문화를 계속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라 말한다.** 하이디 부허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당대의 억압적 이념과 폭력적 관습의 한 가운데에서 계속 흐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했다. 그녀는 흐르고자 했고 흐르면서 사회를 움직이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그 누구보다 전위적이다.

 

 

<Heute fliesst das Wasser aus dem Krug>, 1986 ⓒ The Estate of Heidi Bucher.

 

<Jetzt fliesst das Wasser aus der Vase>, 1987, Locarno ⓒ The Estate of Heidi Bucher.

 

<Krug auf Wasserbett>, 1987, Textile, Latex, Mother-of-pearl pigments, 31 x 39 x 10.5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Untitled>, 1985, Gouache on paper, 30 x 40 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Untitled>, 1985, Gouache on paper, 30 x 40 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Source Enchantee - Bezauberte Quelle>, 1986, Watercolor drawing with painted old postcard, 30 x 21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글의 내용과 사진의 출처는 하이디부허 재단 https://heidibucher.com/biography/.) 

* '가부장적 공간을 깨부수다...하이디 부허 회고전', 노컷뉴스, 2023.03.27일자 기사, https://www.nocutnews.co.kr/news/5916881

** 클레멘트 그린버그. ≪예술과 문화≫. 조주연 옮김(2004). 경성대학교 출판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2023년 4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진행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해외소장품 걸작전’의 일환으로 뉴욕 휘트니 미술관과 공동 기획된 이번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회고전 성격을 띠며,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회화, 드로잉, 판화, 아카이브 등을 포함하여 총 270여점의 작품이 본관 3층에 걸쳐 전시되어 있고,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1942)이나 <철길 옆 호텔(Hotel by A Railroad)>(1952) 등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친숙한 작품들이 오지 못 했지만(아마 휘트니 미술관의 소장품전이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습작과 초기작들을 비롯해 <밤의 창문(Night Windows)>(1928), <자화상>(1925-30), <철길의 석양(Railroad Sunset)>(1929), <이층에 내리는 햇빛(Second Story Sunlight)>(1960) 등 다른 유명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무대로는 그 양과 질에서 잘 꾸려졌다. 무엇보다 작가 특유의 문학적인 심리 표현에 가려(?) 널리 알려지지 못했으나, 전성기 뉴욕시절의 그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던 삽화가, 판화가로서의 이력들, 그리고 아내이자 파트너인 조세핀의 존재 등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호퍼를 재조명하고 국내에 소개하는 자리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 <밤의 그림자>(1921). 에칭.&nbsp;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왼쪽부터) 에드워드 호퍼. <노드 언씬 서스펜더의 '네글리제 셔츠 아래, 그리고 언더셔츠 위에 착용'을 위한 삽화>(1917-1920). 종이에 투명, 불투명 수채, 연필 / <H. 애딩턴 브루스, '사소한 의심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에브리위크" 4호를 위한 삽화>(1917). 종이에 브러시와 잉크, 연필, 불투명 수채. 모두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왼쪽부터) 에드워드 호퍼. <극장 입구>(1906-1910). 종이에 수채, 브러시와 잉크, 연필 / <벽돌공의 휴식>(1907-1910). 종이에 펜과 갈색 잉크, 투명, 불투명 수채, 연필. 모두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1929). 캔버스에 유채.&nbsp;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에드워드 호퍼. <자화상>(1925-1930). 캔버스에 유채.&nbsp;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에드워드 호퍼.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캔버스에 유채.&nbsp;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에드워드 호퍼. <와이오밍의 조(Jo in Wyoming)>(1946). 종이에 수채, 연필.&nbsp;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1.

"호퍼의 관점은 본질적으로 고전적(classic)이다. 그는 그의 주제들을 어떠한 감정이나 정치적 선전, 혹은 극적인 연출도 없이 제시한다."
- 찰스 버치필드(Charles Burchfield, 1893~1967) [1]

그렇다면, 호퍼는 어떤 작가이며, 그의 작품을 어떻게 봐라봐야 할까? 호퍼는 뉴욕의 일상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사실주의(realism)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유력한 견해는 그에게 영향을 줬던 화풍들과 그의 작풍에 대해 고려할 때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호퍼가 태어나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미국의 미술계는 ‘허드슨 강 파(Hudson River School)’ 풍의 사실주의적 풍경화가 그 기반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20세기 초반에는 뉴욕의 정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애쉬캔 화파(Ashcan School)’가 활동하고 있었다. 호퍼에게 그림을 가르쳤던 로버트 헨리(Robert Henri, 1865~1929) 역시 에이트의 일원으로서 그 방향성을 공유했기 때문에 호퍼에게 미친 영향은 분명했을 것이며, 이는 호퍼의 초기작들에 활용된 갈색과 회색조의 어두운 색채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로버트 헨리는 파리에서 공부하며, 마네(E. Manet, 1832~1883)와 프란스 할스(F. Hals, 1582~1666)의 영향을 받았고, 이는 호퍼가 초기에 인상주의 화풍에 매료되었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또한 호퍼가 회화 뿐 아니라 모더니즘 사진 특히, 폴 스트랜드(Paul Strand, 1890~1976)의 스트레이트 사진의 형식미에 영향을 받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같은 일련의 배경 하에서 호퍼의 그림은 분명 사실적이며 “고전적(classic)”인 형식을 일면 갖는다.

 

로버트 헨리. <뉴욕의 눈>(1902). 캔버스에 유채.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로버트 헨리의 영향이 보이는 어두운 색채와 독특한 구도로 포착된 공간들. (왼쪽부터) 에드워드 호퍼의 세 작품. <나이악 예술가의 침실>(1905-1906). 보드에 유채 /  <파리의 거리>(1906). 나무에 유채 / <파리의 다리>(1906). 나무에 유채. 모두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폴 스트랜드. <월 스트리트>(1915). printed 1976&ndash;1977. Platinum palladium print.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2.

화가의 정신과 표현재료의 육체가 분간할 수 없는 어느 극한의 지점에서부터 현대회화는 잉태했다. (......) 오늘의 회화는 이미 인지하고 있는 형태나 세계를 묘사하지 않는다. 이 탐색자들은 ‘측정 불능의 것’ 이것을 그들의 표현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 다시 말하면 오늘의 예술은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창조하는 데 그 생존의 의의를 넓히고 있다. [2]
- 박서보(1931~ )

그러나 통상적인 사실주의 회화가 현실과 이미지 사이의 경계에서 분투하고 있다면, 호퍼는 현실과 이미지 사이에 내면이라는 이차적인 경계를 추가한다. 자신의 회화를 “가장 내밀한 개인적 인상의 전화”[3] 라 정의하는 호퍼는 현실을 내면에서 굴절시킨다. 사실에 심리적 코드를 덧입혀 화폭 위로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선 호퍼의 그림은 사실이기 보다 ‘구상’이다. 상기한 박서보의 글은 60년대 초반 한국 미술계에 있었던 일명 ‘구상 대 추상의 논쟁’에서 추상 진영에 있던 박서보가 당대 한국의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작가들이 사실과 구상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쓴 글의 일부이다. 그의 논지를 거칠게 간추리면, 사실은 대상의 재현에 치중하는 고전적인 방식인 반면, 구상은 추상에 대립하여 등장한 현대의 새로운 조형 이념으로 추상화와 같은 지위에서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창조”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파울 클레(Paul Klee)의 유명한 정식인 예술은 “보이는 것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보이게 한다(non pas rendre le visible, mais rendre visible).”[4] 를 인용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혹은 “‘측정 불능의 것’”을 측정하여 드러내는 구상회화와 단순히 보이는 것, 혹은 “이미 인지하고 있는” 것을 묘사하는데 그치는 사실회화를 완전히 구분한다. 즉 박서보의 구분에 따르자면, 현실의 사물을 자기 안에서 재단하여 형상으로 옮기는 호퍼의 번역 방식은 일상적 지각에서 파악할 수 없는 당대 뉴욕의 심리적 뉘앙스를 감각한다는 점에서 구상의 방식이다.

 

3. 

나는 작업을 하는 동안, 언제나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비전(vision)의 일부분이 아닌 다른 방해적인 요소들의 침입을 발견한다. 그리고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내가 기존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비전이 필연적으로 폐기되고, 대체됨을 발견한다. 내 생각에, 이러한 부패를 방지하고자 하는 투쟁이 임의의 형태 발명에 덜 관심을 가지는 모든 화가들의 공통점이다. [5]
- 에드워드 호퍼

이제 호퍼의 그림은 사실과 구상 사이에 위치한다. 그리고 구상과 사실, 그 사이에서 탄생하는 호퍼의 그림은 ‘감각의 형상’에 다름 아니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박서보가 인용했던 클레의 정식을 마찬가지로 인용하면서 회화를 ‘보이지 않는 힘’, 즉 ‘감각(sensation)’의 포획이라 규정한다.[6] 들뢰즈에게 감각은 일상적 지각에 내재하면서 그것을 만들어내는 발생의 요소로서 지각할 수 없는 것, “측정 불능의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여 호퍼의 그림 도식을 표현하자면 ‘그림 = 현실 오브제(사실)---내면의 굴절(감각의 개입)---형상의 창조(구상) = 감각의 형상’ 정도가 될 것이다. 호퍼 역시 자신의 의식에서 벗어난 감각의 개입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비전을 폐기하고 대체하는 “방해적인 요소들의 침입”, 그 요소가 결국 감각의 심급에 해당하는 형언할 수 없는 ‘무엇’이 아니었을까? 호퍼 자신은 감각적 요소의 침입을 “부패”라 규정하고 그림의 구도에서 삭제하려고 노력한다고 하지만, 사실 호퍼 스스로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의지로는 지울 수 없는 감각의 개입을, 그리고 자신이 그리고 있는 것이 ‘감각’이라는 것을. 

 

 

에드워드 호퍼. <오전 7시>(1948). 캔버스에 유채.&nbsp;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에드워드 호퍼. <뉴욕 실내>(1921). 캔버스에 유채.&nbsp;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1] (1933). 「에드워드 호퍼: 고전주의자」. 에드워드 호퍼 회고전의 도록. New York: The Museum of Modern Art. 16.

[2] 오광수(1998). 『한국 현대미술 비평사』. 서울: 미진사. 135. 재인용.; 박서보(1963.5.29.). 「구상과 사실」. 『동아일보』.

[3] 롤프 귄터 레너. (2005). 『에드워드 호퍼』. 정재곤 옮김. 서울: 마로니에북스. 65. 재인용; Lloyd Goodrich(1971/1983).

      Edward Hopper. New York. 161.

[4] G. Deleuze(1981/2002). Francis Bacon: Logique de la Sensation. Paris: Seuil. 57.

[5] 「회화에 대한 단상」. 위의 도록. 17-18.

[6] G. Deleuze. 위의 책. 5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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