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역사쓰기: 현상학적 조명의 방식
- MMCA <올해의 작가상 2023> 중 'who will care for our caretakers: 누가 우리를 돌보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
궁극적으로 내 작업은 유산의 힘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한 것으로 어떠한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묻혀있던 것을 조명하고 그 존재를 밝히는 일이 역사가의 소임이라면, 같은 이유에서 이강승은 역사가와 같다. 그는 ‘괴상한(queer)’ 이야기를 재조명한다. 괴상하게도 쉽게 잊혀 졌고, 존중받지 못했던 그들을 재소환하여 무대에 올리는 이강승의 작업은 ‘그들이 그곳에 있었노라’ 선언하며 역사의 재편, 혹은 새로운 역사쓰기를 기도한다. 다만, 그가 선언하는 방식은 여타의 것들과 달리 명령조라기보다 차라리 간곡하다. 그들의 이야기에 오히려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이다. 네온과 금실, 흑연으로 삼베 위에 쓰인 역사는 아스라이 사라졌던 그들의 이야기만큼이나 위태롭고도 찬란하게 그들의 존재를 ‘지금 여기’에 드러낸다. 거대한 기념비로 세워진 드랙퀸들의 벽화, 오준수(1964-1998)와 데릭 저먼(Derek Jarman, 1942-1994)의 이야기, 고추산(Goh Choo San, 1948-1987)의 유산 등은 작가의 직조 아래 한데 엮이며 스스로가 ‘존재했음’을 공표하고, 마틴 웡(Martin Wong, 1946-1999)의 수화언어로부터 차용된 상징들은 손을 치켜들어 그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선언하는 듯하다. 분명 그와 같은 지지와 연대는 너무나 섬세하고 연약하기에 또 다시 기억의 심연 속으로 사그라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강승이 보살펴 마련한 그들의 자리는 지금 여기에 남을 것이며, 끊임없이 그들의 ‘현존’을 지시할 것이다. 비어있기(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시될 수 있는 그들의 존재는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 내 삶의 반경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기에 불편할 수 있는 진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죽어 사라진 그들의 유산을 보살피고, 현존하는 그들의 존재를 돌보는 보다 적극적인 이해의 시도는 '그들'이 '우리'가 될 그 언젠가의 미래로 향한다.
* 갤러리현대 웹사이트, 'Kang Seung Lee 이강승: Plus magazine', 2022.06.25., https://www.galleryhyundai.com/story/view/200000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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