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라기 보다는 간단한 후기입니다.
관계의 풍경
- 갤러리현대, 유근택 개인전 <반영>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조건들 속에서의 나의 ‘호흡,’ 나의 ‘태도’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삶과 마주하고 있는 나의 몸과 체계를 드러내는 하나의 관점이 된다. 이 때의 내가 부딪히는 사물들, 즉 장난감들의 광경이나 전화박스, 나의 생활공간, 분수, 그리고 앞산 연구 등 이러한 일상적인 대상들이 때로는 너무도 낯설게, 혹은 신비스러운 힘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러한 ‘낯설음’이란 것은 내게 있어서 사물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그림에 접근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는데, 그것은 간혹 내 삶의 위치를 환기시켜주는 하나의 장치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에 스며든 물감은 면을 이루고 그 위로 쌓이는 호분(胡粉)은 깊이를 만든다. 그렇게 세워진 시공 안에서 유근택(1965~)은 호흡한다. 들숨과 날숨. 이웃한 사물의 숨결을 들이키고, 자신을 내뱉는 과정. 한지는 작가가 일상과 관계를 맺는 접점이자 실존의 장이다. 한지 위에 펼쳐지는 것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나와 너의 풍경’이다. 그의 <자화상>들에서 그 자신의 온전함이 아닌 풍경에 물들어 가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지 위에 반쯤 뭉개지거나 흐무러진 그는 새로운 풍경이 ‘된다.’*** 2015년부터 시작된 그의 철솔질 역시 한지의 물성을 드러내어 자신과 풍경 모두를 지우고, 관계가 그리는 제 3의 풍경을 표현하기 위한 지난한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유근택은 언제나 자신과 일상, 나와 너의 경계에 서고자 한다. 때때로 그는 노란 풍경 안에 우뚝 선 얼굴 없는 사람으로, 또 떨어짐과 올라감을 반복하는 수직의 분수로 분하여 실존적 고뇌를 지속하며 관계의 풍경을 그려낸다.
* 갤러리현대, https://www.galleryhyundai.com/artist/view/20000000077, 2023.11.06일 접속
** https://www.youtube.com/watch?v=JKF1BfLAOkk, 14분 29초.
*** ‘~이 되다’는 질 들뢰즈의 ‘devenir’ 개념을 지시한다. 해당 개념은 ‘되기’ 내지 ‘생성’으로 번역되는데, ‘되기’는 나와 네가 모두 자신의 정해진 규정에서 빠져나와 ‘제 3의 장소’에서 만남으로써 둘 모두가 이전과 다르게 생성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것이 ‘되기’ 위해서 먼저 타자와의 ‘관계’가 전제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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