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arthing*
- 키얀 윌리엄스 개인전 <별빛과 진흙사이>, 페레스프로젝트, 2023. 9. 7 ~ 11. 12.
이 모든 활동에서 나는 내가 거주하고 물려받은 세계를 증언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전통과 역사를 구축하기 위해 비천한 재료인 흙, 건축 잔해, 곰팡이와 협력하여 그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듣거나, 문서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삶을 듣고 발굴합니다.
땅을 파고, 파고, 또 파낸다. 그렇게 파헤쳐진 흙은 ‘낯선’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흑인 동산노예(chattel)의 이주와 이름 없는 죽음, 증조모가 남긴 생애의 흔적. 그 자체로 ‘흑인 디아스포라’와 ‘아프로-아메리카’의 역사를 품은 대지의 부스러기는 키얀 윌리엄스(Kiyan Williams, 1991~)에게 발굴되어 새로운 기념비의 재료로 사용된다.** 작가에게 흙은 단순한 재료를 넘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은유하는 상징이다. 그러니까 땅을 파내고 흙을 수집하는 반복적 행위는 은폐되고 유기되었던 자신의 ‘근거’ 를 탐색하고 그곳에 ‘뿌리’내리기 위한 욕망의 발로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접지(earthing)의 행위는 영구적인 정착이나 고착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다른 무언가가 되기 위한’ 역사적 양분을 획득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에게 뿌리내림은 익명으로 사라져간 자신의 선조와 이웃을 감각하고, 그들과 하나로 얽혀있음을 느끼는 인식의 과정인 것이며, 흙으로 해체된 그들과 함께 새로운 형상을 빚어내기 위함인 것이다.
* 'Un/earthing'은 2022년 뉴욕 라일즈앤킹(Lyles and King)에서 열렸던 작가의 개인전 <Un/earthing>에서 차용했다. 또한 Unearthing은 2016년 뉴욕 딕슨플레이스(Dixon Place)에서 진행했던 작가의 첫 퍼포먼스 작품의 이름이기도 하다. earthing이 ‘접지’, ‘정착’ 등을 뜻한다면, unearthing은 ‘파내기’, ‘발굴하기’처럼 ‘땅에서 분리되는 행위’를 의미할 것이다.
** 작가는 과거 아프리카 노예들의 묘지였으나, 현재는 공원으로 이용되는 집 근처 공터에서 흙과 식물을 수집하여 <Unearthing>(2016)에 사용하였고, 흑인 노예들이 미국으로 처음 이주했던 장소 중에 한 곳인 버지니아주 리치몬드(Richmond, Virginia)의 포와탄(Powhatan) 강변에서 채집한 흙을 가지고 그곳에 <Reaching Towards Warmer Suns>(2022)를 만들어 심었다. 또한 작가는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증조모의 옛 집터를 찾아가 흙을 채집하고, 그것을 <Meditation on the Making of America>(2019)에 활용하였다.
*** 작가 홈페이지 https://www.kiyanwilliam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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