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1. 정지현, <Hangdog>, 조희현 기획, 아트선재센터, 1월 7일.

2. 타렉 아투이, <The Rain>, 김선정, 김지나 기획, 아트선재센터, 1월 7일.

3. 홍순명, <저기,(Over there,)>, CR Collective, 1월 13일.

4. 민찬욱, 태킴, 정찬민 등 6명,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4도씨>, 《논알고리즘 챌린지》 part 2와 3, 세화미술관, 2월 29일.

5. 정나영, 최연우, 남민오 등 7명, <무솔리니 팟캐스트>, 안재우 기획, 아마도예술공간, 제11회 아마도전시기획상 수상전, 3월 26일.

6. 갈라 포라스-킴, <국보>, 리움미술관, 3월 26일.

7. 시야디에(Xiyadie), 요린데 포그트(Jorinde Voigt), <Jorinde Voigt & Xiyadie 2.0>, P21, 3월 26일.

8.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호암미술관, 4월 20일.

9. 이배, 황인기, 안규철 등 6명, <드로잉, 삶의 철학을 그리다> & 김진, 서찬석, 신경철 등 10명(팀), <드로잉 페어링: 감각의 연결>, 소마미술관, 4월 30일.

10. 이다희, 호크마 김, 최기창 등 5명, <길을 찾는 순간 들리는>, KT&G 상상마당 춘천, 5월 2일.

 

11. 박민하, 송세진, 윤영빈 등 12명,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윤율리 기획, 일민미술관, 6월 16일.

12.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7월 21일.

13. MMCA 소장품 특별전, <가변하는 소장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7월 21일.

14. 강수빈, 권현빈, 장서영 등 7명, <사라졌다 나타나는>, 김선영 기획, 경기도미술관, 8월 25일.

15. 강수빈, <필드테스트: 움찔거리기>, 갤러리광명, 8월 25일.

16. 단체 기획전,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9월 15일.

17. 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 부산현대미술관, 한성1918, 부산근현대역사관, 10월 9~10일.

18.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국립현대미술관, 10월 20일.

19. 김창열, 권영우, <두 개의 숨>,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 11월 21일.

20. 단체 기획전, <손이 따뜻한 예술가들: 그 온기를 이어가다>, 유동룡 미술관, 11월 21일.

 

21. 단체 기획전, <언두 플래닛>, 아트선재센터, 12월 10일.

22.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 아트선재센터, 12월 10일.

23. 박정연, 김유자, <어둠이 오면 내가 찾아가리라>, 합정지구, 12월 12일.

 

 

영화

1.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2023), 1월 1일.

2. 윤종석, <자백>(2022), 1월 20일.

3. 폴 킹, <웡카>(2024), 2월 27일.

4. 오시이 마모루, <공각기동대>(1995), 2월 28일.

5. 헤더 윌크, <크레센도>(2023), 2월 28일.

6. 장재현, <파묘>(2024), 3월 1일.

7. 장재현, <사바하>(2019), 3월 9일.

8. 하마구치 류스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4), 3월 28일.

9. 나홍진, <황해>(2010), 4월 8일.

10. 김성수, <서울의 봄>(2023), 5월 14일.

 

11. 조나단 글래이저, <존 오브 인터레스트>(2024), 6월 15일.

12. 관후, <블랙 독>(2024), 10월 10일.

13. 존 추, <위키드>(2024), 11월 25일.

14.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타인의 삶>(2007), 12월 7일.

15. 코랄리 파르자, <더 서브스턴스>(2024), 12월 16일.

 

 

연극 및 공연

1. <2024 서울시향 신년 음악회>, 세종문화회관, 1월 5일.

2. <접변>, 대학로 TOM, 8월 27일.

3. <마지막 포에티카>, 실험무대702, 10월 27일.

4. <타인의 삶>, LG아트센터 마곡, 12월 5일.

5. <noBody>, 대학로예술극장, 12월 28일.

 

 

1. 마크 피셔,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구픽, 2019.

2.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1952(2000).

3. 브라이언 딜런, <에세이즘>, 카라칼, 2023.

4. 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 in 토마스 만 단편선, 민음사, 1998.

5. 서머싯 몸, <비>, in 서머싯 몸 단편선 1, 민음사, 2021.

6.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7. 프란츠 카프카, <변신>, in <변신, 시골의사>, 민음사, 1998.

8. 존 D. 카푸토, <포스트모던 시대의 철학과 신학>, CLC, 2016.

 

 

 

한 해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나름의 방법이 된 '본 것' 리스트.

 

이미 올해의 리스트도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2025년에는 더 많은 전시를, 더 다양한 공간에서 보고 싶다.

이제 막 기록하기 시작한 '연극 및 공연'도 더욱 열심히 보러 다니고 싶다.

이번 리스트에서 가장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은 '책'이다. 올해 목표로 세운 20권, 이것도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목표를 잡아 보았고, 무리하지 않은 만큼 꼭 이루고 싶다.

 

새로운 한 해를 앞두고서는 항상 이렇게 하고 싶다는 말과 이루고 싶다는 소망이 두서 없이 나열된다.

이러한 바람들이 결실없이 공연해지지 않도록 올 한 해도 잘 보내고 싶다.

 

1. 강석호, 「강석호: 3분의 행복」, 강석호 작가 회고전, SeMA서소문관, 이은주 초청 큐레이터, 112.

2. 페터 바이벨,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 MMCA서울, 218.

3. Yann BAAC, 「소통의 다리」, L153아트컴퍼니, 작가 기획, 32.

4. 신선주, 박관우, 이연숙, 「검은 기둥의 감각」, 아트스페이스 호화, 고윤정 기획, 32.

5. 심규승, 박재성, 강수빈, 김준수, 최은지, 홍유영, 2023 별도의 기획전: 물질」과 세미나, 옥상팩토리, 이주연 기획, 312.

6. 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SeMA서소문관, 57.

7. 카라바조 50,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국립중앙박물관, 67.

8. 하이디 부허,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아트선재센터, 김선정, 문지윤 기, 618.

9. 단체전,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MMCA서울, 74.

10. 서용선, 「내 이름은 빨강」, 아트선재센터, 729.

 

11. 단체전,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아트선재센터, 7월 29일.

12. 김환기, 「한 점 하늘: 김환기」, 김환기 회고전, 호암미술관, 8월 25일.

13. 김구림, 「김구림」, MMCA서울, 8월 27일.

14. 김민지, 성필하, 신민, 오세경, 이한나, 「물의 나라에서」,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 정현경 기획자, 9월 7일.

15. 최상흠, 「가설 건축물」, 스페이스 캔 & 오래된 집, 9월 15일.

16. 권다예, 「CHROMARIUM」, 챔버1965, 오상은 기획자, 9월 15일.

17. 우수빈, 「WINTER JUNGLE」, 안팎스페이스, 장순원 기획자, 9월 15일.

18. 피카소, 「피카소 도예전」, MMCA 청주, 소장품전, 10월 13일.

19. 단체전, 「디지털 스토리: 이야기가 필요해」, MMCA 청주, 10월 13일.

20. 단체전, 「건축, 미술이 되다」, 청주시립미술관, 10월 13일.

 

21. 단체전, 「사물의 지도」,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1014.
22.
김기창, 「운보미술관 상설전」, 운보미술관, 1014.
23.
정연두, 「백년 여행기」, MMCA 서울, 1023.
24.
갈라 포라스-, 전소정, 이강승, 권병준, 2023 올해의 작가상」, MMCA 서울, 1023.
25.
김유정 문학촌 기념전시관, 1024.
26.
류민지, 한황수, 「시선유희」, 스페이스 윌링앤달링, 1027.
27.
이강소, 「바람이 분다: 조각에 관하여」, 리안갤러리 서울, 1027.
28.
국립춘천박물관, 상설전시장 & 「창령사 터 오백나한: 나에게로 가는 길」, 1031.

29. 국립춘천박물관, 「오대산 월정사: , 산 속에서 피어난 이야기」, 1031.

30. 이재복, 「찬란한 순간」, 개나리미술관, 1031.

 

31. 유근택, 「반영」, 갤러리현대, 113.

32. 정다정 & 함진, 「정다정 X 함진」, 프로젝트 스페이스(PS) 사루비아, 2023 Studio Project 3: 큐레이터 기획전, 113.

33. 단체전, 春川: 바람, 햇빛, 강물 그리고 사람」,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 117.

34. 단체전, 「화로」, 강원대학스포센터 전시장, 117.

35. 키얀 윌리(Kiyan Williams), 「별빛과 진사이」, 페레스프로젝트, 1110.

36. 파올로 바도르(Paolo Salvador), 「천에 새겨진 미스터리」, 페레스프로젝트, 1110.

37. 단체전, 「아니, , 아트스페이스 보안(보안여관), 강영희 기, 1110.

38. 서울공예박물관, 「자수, 이 피다」, 「보자기, 일상을 감다」, 상설전시, 1112.

39. 단체전, 「공예 다이로그」, 서울공예박물관, 별기획전, 1112.

40. 이승권, 「치르치르의 파랑새, weksa, 1126.

 

41. 김진선, 「공의 실」, COSO, 1126.
42.
이현우, Drivers High, 별관, 123.
43.
수민, A Good Knight, 정지구, 127.
44.
단체전, 「서예술실험센터 장래(場來式), 예술실험센터, 127.
45.
단체전, 「희미하게 러 아빛나는」, 대안공간 루프, 127.
46. <WESS
전시2023>, 나선도서관, 1210.
47.
김소라, 「파: 소라에게」, 별관, 1217.
48.
단체전, 절의 사이비집고 어가」,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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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가 읽기는 재미 없어도 보기엔 일목요연해서 좋은 듯하다.

 

2023년 많이 보려고 했다. 많이 보려다 보니 또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특히 춘천을 오갔던 기억이 생생하고, 첫 전시인 '강석호' 전은 작년에 본 것마냥 아득하다.

그래도 그 이름을 읽음과 동시에 모든 전시의 전경이 눈 앞에 그려지니 허투루 보진 않은 모양이다.

좋았던 전시도 있었고, 그닥 즐기지 못했던 전시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재밌게 보지 않았던 전시들도 나름의 것들을 가르쳐줬기 때문에,

결국 가서 보는 게 가장 좋은 공부인가 싶다.

 

눈과 발이 바빴던 한 해를 보내서 뿌듯했고,

쪼개어 썼던 시간이 나름의 결실로 드러나게 되어서 보람찼고,

최소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돼버린 사람'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아무튼 좋았다.

 

 

그때, 그곳, 그것이 남긴 사진

- 이승권 개인전, <치르치르의 파랑새>, 웩사(weksa), 2023. 11. 12 ~ 11. 26.

 

 

 

 

 

 

    작업 배경에 대한 설명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히말라야 여행담으로 흘러갔다. 히말라야산맥을 보며 느꼈던 경외감은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거나 간과했을, 혹은 기억이라면 서서히 잊혀져갔을 '희미한 존재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때, 그곳, 그것'이라고 돌려서 지칭할 수밖에 없는 무명의 것들. 그러나 분명 그날, 그 장소, 그 시간에 있었기에 기억에 남았고 어쩌면 우리 삶을 이루고 있을 명징한 편린들. 작가는 스스로 사진에 담길 상황과 동화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때에, 그곳에, 그것에 충분히 녹아들었을 때 셔터는 눌러진다. 이는 각각의 편린을 그 순간의 맥락에서 도려내지 않고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전체로서 담아내려는 작가의 비폭력적 촬영의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이승권의 사진에서는 피사체가 보이기보다는 그때, 그곳, 그것이 먼저 느껴진다. '그때, 그곳, 그것이 남겨놓은 흔적'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이는 그의 사진은 그때의 공기, 그곳의 빛깔, 그것의 숨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전시전경

 

 

 

전시전경

 

 

 

전시전경

 

 

전시전경

 

 

 

짙눈깨비, 2023, 100x140.

 

 

 

밤으로의 긴 여로, 2022, 100x140.

 

 

 

안녕 선우일란, 2023, 50x70.

 

 

 

(왼쪽부터) 숨이 가득 찬 방, 2022, 12x17. / 2시 지나서, 2022, 12x17.

 

 

 

조약돌의 조약돌의 조약돌, 2023.

 

 

 

 

 

 

 

 

 

 

 

 

 

 

 

 

 

* 맨처음의 전시장 입구 사진과 아래에서 두 번째 작품 사진을 제외한 모든 사진은 weksa의 웹사이트 https://weksa.co.kr/에서 가져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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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와 다른 하나, 그 사이에 손끝

- <아니말, 그들이 왕이었을 때>, 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 2023. 10. 20 ~ 11. 12.

 

 

은혜의 새 #3, 2023, 266x200cm, 텐트천에 라텍스 프린트. Copyright 2023 Eun Chun.

 

 

 

저는 트래비스를 게처럼 걷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 저는 서투르게, 옆으로 또 뒤로 걷는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그건 당신이 게를 흉내 내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미지가 당신에게 협업해야 할 무언가를 주는 것이죠. 그건 당신이 다른 종류의 행동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어떤 사람이 갈라진 나무줄기 사이에 쪼그려 앉아 있다. 마치 한 마리의 새와 같은 자태로. 자신을 찍는 사진가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날아갈 태세이다. 전명은은 새를 닮은 사람과 그가 숨겨놓은 또 다른 새를 찍어 놓은 모양이다.** 그 새의 이름은 권은혜이다. 권은혜는 배우이기도 하다. 권은혜는 새를 연기한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에 따르면, 배우의 연기란 그 대상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대상이 모두 스스로의 규정으로부터 나와 새로운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행위이다. 그러니까 사진에 담긴 '청록색의 은혜-(Turquoisebird)'는 더 이상 권은혜도, 그 어떤 새도 아니다. 차라리 다른 것이 되는 중인 새 혹은 권은혜이다.

 

 

 

최근 조각가에 관한 작업을 하면서, 감각의 끝이 닿는 곳에 있는 건 살아있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진가의 기관은 눈이 아니라 손가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셔터를 누르는 순간마다 사진가의 손가락은 곧바로 또 다른 순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게 아닐까?***

 

 


    전명은의 사진이 어떤 독특한 지점을 포착하고 있다면, 그곳은 하나와 다른 하나의 사이지점일 것이다. 그 지점은 권은혜와 새처럼 다른 두 개체 사이가 될 수도 있지만, 하나의 조각, 식물, 겨울이라는 계절을 이루고 있는 시간의 면과 면 사이로 나타나기도 한다. 결코 눈에 현상되지 않는 중간점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해 전명은은 그렇게도 오랜 시간을 들여,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피사체의 삶과 접촉하는 것이다.

 

 

 

 

은혜의 새 #4, 2023, 100x75cm,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은혜의 새 #1, 2023, 80x60cm,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가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자신이 분한 트래비스 비클의 극중 행 동 방식을 고민하면서 했던 인터뷰. [성기현. (2017). 「들뢰즈의 감각론 연구」. 철학박사학위논문. 서 울: 서울대학교 대학원. p. 106]에서 재인용.

 

** 20231020일부터 1112일까지 보안1942’에서 열린 <아니말, 그들이 왕이었을 때> 전에 작 품 소개글로 전시된 전명은의 작가노트에서 발췌.

 

*** 전명은, <작가노트>, 2018, http://chuneun.com/?page_id=1143

 

 

Un/earthing*

- 키얀 윌리엄스 개인전 <별빛과 진흙사이>, 페레스프로젝트, 2023. 9. 7 ~ 11. 12.

 

 

 

 

 

 

이 모든 활동에서 나는 내가 거주하고 물려받은 세계를 증언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전통과 역사를 구축하기 위해 비천한 재료인 흙, 건축 잔해, 곰팡이와 협력하여 그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듣거나, 문서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삶을 듣고 발굴합니다.




별빛과 진흙사이, 2022,&nbsp;earth, sandstone, wire, hardware 120 x 96 x 96 inches

 

 

    땅을 파고, 파고, 또 파낸다. 그렇게 파헤쳐진 흙은 낯선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흑인 동산노예(chattel)의 이주와 이름 없는 죽음, 증조모가 남긴 생애의 흔적. 그 자체로 흑인 디아스포라아프로-아메리카의 역사를 품은 대지의 부스러기는 키얀 윌리엄스(Kiyan Williams, 1991~)에게 발굴되어 새로운 기념비의 재료로 사용된다.** 작가에게 흙은 단순한 재료를 넘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은유하는 상징이다. 그러니까 땅을 파내고 흙을 수집하는 반복적 행위는 은폐되고 유기되었던 자신의 근거를 탐색하고 그곳에 뿌리내리기 위한 욕망의 발로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접지(earthing)의 행위는 영구적인 정착이나 고착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다른 무언가가 되기 위한역사적 양분을 획득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에게 뿌리내림은 익명으로 사라져간 자신의 선조와 이웃을 감각하고, 그들과 하나로 얽혀있음을 느끼는 인식의 과정인 것이며, 흙으로 해체된 그들과 함께 새로운 형상을 빚어내기 위함인 것이다.

 

 

 

 

 

 

 

 

 

* 'Un/earthing'은 2022년 뉴욕 라일즈앤킹(Lyles and King)에서 열렸던 작가의 개인전 <Un/earthing>에서 차용했다. 또한 Unearthing2016년 뉴욕 딕슨플레이스(Dixon Place)에서 진행했던 작가의 첫 퍼포먼스 작품의 이름이기도 하다. earthing접지’, ‘정착등을 뜻한다면, unearthing파내기’, ‘발굴하기처럼 땅에서 분리되는 행위를 의미할 것이다.

 

** 작가는 과거 아프리카 노예들의 묘지였으나, 현재는 공원으로 이용되는 집 근처 공터에서 흙과 식물을 수집하여 <Unearthing>(2016)에 사용하였고, 흑인 노예들이 미국으로 처음 이주했던 장소 중에 한 곳인 버지니아주 리치몬드(Richmond, Virginia)의 포와탄(Powhatan) 강변에서 채집한 흙을 가지고 그곳에 <Reaching Towards Warmer Suns>(2022)를 만들어 심었다. 또한 작가는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증조모의 옛 집터를 찾아가 흙을 채집하고, 그것을 <Meditation on the Making of America>(2019)에 활용하였다.

 

*** 작가 홈페이지 https://www.kiyanwilliams.com/

전시 리뷰라기 보다는 간단한 후기입니다.

 

 

관계의 풍경

- 갤러리현대, 유근택 개인전 <반영>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조건들 속에서의 나의 ‘호흡,’ 나의 ‘태도’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삶과 마주하고 있는 나의 몸과 체계를 드러내는 하나의 관점이 된다. 이 때의 내가 부딪히는 사물들, 즉 장난감들의 광경이나 전화박스, 나의 생활공간, 분수, 그리고 앞산 연구 등 이러한 일상적인 대상들이 때로는 너무도 낯설게, 혹은 신비스러운 힘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러한 ‘낯설음’이란 것은 내게 있어서 사물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그림에 접근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는데, 그것은 간혹 내 삶의 위치를 환기시켜주는 하나의 장치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드로잉 작업 중인 작가, 'MMCA 작가와의 대화: 유근택 작가'에서 장면 캡쳐**

 

 

 

      한지에 스며든 물감은 면을 이루고 그 위로 쌓이는 호분(胡粉)은 깊이를 만든다. 그렇게 세워진 시공 안에서 유근택(1965~)은 호흡한다. 들숨과 날숨. 이웃한 사물의 숨결을 들이키고, 자신을 내뱉는 과정. 한지는 작가가 일상과 관계를 맺는 접점이자 실존의 장이다. 한지 위에 펼쳐지는 것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나와 너의 풍경’이다. 그의 <자화상>들에서 그 자신의 온전함이 아닌 풍경에 물들어 가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지 위에 반쯤 뭉개지거나 흐무러진 그는 새로운 풍경이 ‘된다.’*** 2015년부터 시작된 그의 철솔질 역시 한지의 물성을 드러내어 자신과 풍경 모두를 지우고, 관계가 그리는 제 3의 풍경을 표현하기 위한 지난한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유근택은 언제나 자신과 일상, 나와 너의 경계에 서고자 한다. 때때로 그는 노란 풍경 안에 우뚝 선 얼굴 없는 사람으로, 또 떨어짐과 올라감을 반복하는 수직의 분수로 분하여 실존적 고뇌를 지속하며 관계의 풍경을 그려낸다.

 

 

 

 

반영, 2023,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144 X 101cm.

 

 

 

분수, 2023,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145 X 103cm.

 

 

 

(순서대로) 자화상, 2023, ink, white powder and gouache on paper, 35 X 25.5cm / 자화상, 2015,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89 X 89cm.

 

 

 

이사, 2018,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205 X 220cm와 세부 컷.

 

 

 

말하는 정원, 2019,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146 X 203cm.

 

 

 

말하는 정원, 2018,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146 X 161cm.

 

 

 

봄-세상의 시작, 2023,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250 X 206cm와 세부 컷.

 

 

 

1층 전시전경

 

 

2층 전시전경

 

 

지하 전시전경

 

 

 

 

 

 

* 갤러리현대, https://www.galleryhyundai.com/artist/view/20000000077, 2023.11.06일 접속

** https://www.youtube.com/watch?v=JKF1BfLAOkk, 14분 29초.

 

*** ‘~이 되다’는 질 들뢰즈의 ‘devenir’ 개념을 지시한다. 해당 개념은 ‘되기’ 내지 ‘생성’으로 번역되는데, ‘되기’는 나와 네가 모두 자신의 정해진 규정에서 빠져나와 ‘제 3의 장소’에서 만남으로써 둘 모두가 이전과 다르게 생성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것이 ‘되기’ 위해서 먼저 타자와의 ‘관계’가 전제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퀴어 역사쓰기: 현상학적 조명의 방식

- MMCA <올해의 작가상 2023> 중 'who will care for our caretakers: 누가 우리를 돌보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

 

 

 

무제(CARE), 2023, 네온, 65 X 95cm

 

 

궁극적으로 내 작업은 유산의 힘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한 것으로 어떠한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묻혀있던 것을 조명하고 그 존재를 밝히는 일이 역사가의 소임이라면, 같은 이유에서 이강승은 역사가와 같다. 그는 ‘괴상한(queer)’ 이야기를 재조명한다. 괴상하게도 쉽게 잊혀 졌고, 존중받지 못했던 그들을 재소환하여 무대에 올리는 이강승의 작업은 ‘그들이 그곳에 있었노라’ 선언하며 역사의 재편, 혹은 새로운 역사쓰기를 기도한다. 다만, 그가 선언하는 방식은 여타의 것들과 달리 명령조라기보다 차라리 간곡하다. 그들의 이야기에 오히려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이다. 네온과 금실, 흑연으로 삼베 위에 쓰인 역사는 아스라이 사라졌던 그들의 이야기만큼이나 위태롭고도 찬란하게 그들의 존재를 ‘지금 여기’에 드러낸다. 거대한 기념비로 세워진 드랙퀸들의 벽화, 오준수(1964-1998)와 데릭 저먼(Derek Jarman, 1942-1994)의 이야기, 고추산(Goh Choo San, 1948-1987)의 유산 등은 작가의 직조 아래 한데 엮이며 스스로가 ‘존재했음’을 공표하고, 마틴 웡(Martin Wong, 1946-1999)의 수화언어로부터 차용된 상징들은 손을 치켜들어 그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선언하는 듯하다. 분명 그와 같은 지지와 연대는 너무나 섬세하고 연약하기에 또 다시 기억의 심연 속으로 사그라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강승이 보살펴 마련한 그들의 자리는 지금 여기에 남을 것이며, 끊임없이 그들의 ‘현존’을 지시할 것이다. 비어있기(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시될 수 있는 그들의 존재는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 내 삶의 반경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기에 불편할 수 있는 진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죽어 사라진 그들의 유산을 보살피고, 현존하는 그들의 존재를 돌보는 보다 적극적인 이해의 시도는 '그들'이 '우리'가 될 그 언젠가의 미래로 향한다.

 

 

 

 

 

 

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 2022, 삼베에 엔틱 24k 금실, 호두나무 액자, 약 38 X 57cm

 

 

 

라자로(정다은, 네이슨 머큐리 킴과의 협업), 2023, 단채널 4K 비디오, 7분 52초 중 일부 장면

 

 

<Garden> 프로젝트의 일부

 

 

 

무제(오준수의 편지), 2018, 종이에 흑연, 160 X 120cm

 

 

 

무제(너의 데님 셔츠), 2023, 양가죽 양피지에 흑연, 수채, 엔틱 24k 금실, 삼베, 진주, 약 76 X 111cm

 

 

 

전시 전경

 

 

 

 

 

 

 

 

* 갤러리현대 웹사이트, 'Kang Seung Lee 이강승: Plus magazine', 2022.06.25., https://www.galleryhyundai.com/story/view/20000000217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전의 전시 모습

 

하이디 부허(Heidi Bucher, 1926~1993)의 아시아 첫 회고전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전이 6월 25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됐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하이디 부허가 작고한 다음 개최된 작가의 회고전 및 개인전은 2004년 취리히 미그로스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하이디 부허: 자개(Heidi Bucher: Mother of Pearl)>전시를 시작으로 2022년까지 20번 가량의 크고 작은 전시가 진행되었고, 이번 전시를 제외한 마지막 회고전은 2021년 독일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서 시작해서 2022년 스위스 쿤스트뮤지엄 베른과 스위스 수쉬 미술관을 순회한 <변신(Metamorphoses)>전이다. 이처럼 작가는 2000년대 이후에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하이디 부허 재단(The Estate of Heidi Bucher)의 운영자이자 그녀의 아들인 메이요 부허(Mayo Bucher)는 "과거 유럽은 쇼비니즘과 남성주의적 시선에 빠져 있었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고 앞으로 계속 바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하이디 부허의 작품이 재발견된 건 여러분 덕분"이라고 평했다.*

 

 

 

Heidi Bucher, portrait-studio. ⓒ The Estate of Heidi Bucher. 마크 로스코 계열의 색면추상회화와 바우하우스의 교수이기도 했던 파울 클레의 사진이 눈에 띈다.

 

 

1.

이번 전시에는 1940~50년대의 초기 작품부터 80년대 후반 말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총 13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었고, 조각과 설치, 드로잉, 실크 콜라주, 영상, 다큐멘터리 등이 전시됐다. 퍼포먼스나 작품 제작의 기록용으로 활용한 영상과 다큐멘터리를 제외한다면 하이디 부허가 다룬 주요 매체는 조각과 설치, 드로잉, 그리고 실크 콜라주라고 할 수 있겠다. 연대순으로 따져보면 40~50년대에는 실크 콜라주드로잉 작업이 주를 이룬다. 이는 작가가 1944년부터 1947년까지 취리히 미술공예학교에서 패션과 섬유를 전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작품을 보면 옷을 제작하기보다는 색채 실험, 직물 콜라주 등 조형적이고 매체적인 실험 작업을 지속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그녀와 활발히 교류했던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녀를 취리히 학교에서 가르쳤던 사람은 다다이스트 였던 소피 테우버-아르프(마찬가지로 다다이스트인 한스 아르프[Hans Arp, 1887~1966]의 아내이기도 하다)의 제자인 엘시 지오크였고, 무엇보다 전 바우하우스의 교수였던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 1888~1967)이 당시 취리히 미술공예학교의 교장이었기 때문에 그의 색채 이론과 커리큘럼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작가는 다다이즘의 전문가이자 컬렉터였던 한스 볼리제와 절친한 관계였다고도 한다.

 

 

<Study>, 1945, Watercolour and pencil on paper, 21 x 30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Silk collage>, 1956, Collage on cardboard, 28 x 18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Silk collage>, 1957, Collage on cardboard, 50 x 34.5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Untitled>, 1959, Textile, Collage on cardboard, 31.5 x 44.5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Untitled>, 1959, Oil on cardboard, 30 x 40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2.

70년대로 들어서면서 하이디 부허는 '바디랩핑(Body Wrappings)''바디쉘(Bodyshells)' 그리고 '소프트 오브젝트(Soft Objects)' 작품을 제작하며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계열의 작업을 시작한다. 이는 미국 거주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그녀는 남편이자 현대 미술 작가였던 칼 부허와 두 아들과 함께 7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게된다. 거기서 그녀는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1939- )가 미리엄 샤피로와 함께 제작한 기념비적 설치 작업인 <여성의 집(Womanhouse)>(1972)을 관람하는 등 여성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드러운 스티로폼으로 신체를 둘러싸는 '바디랩핑' 작업이나 보다 완전한 수트 혹은 갑옷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바디쉘' 작업은 마치 곤충의 외피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고, 이는 자신의 몸을 둘러싼 보호막이자 해방을 위해 벗어던지고 나아가야 할 껍데기라는 은유를 지닌다. 특히 바디쉘 작업은 칼 부허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Landings to Wear'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협업은 칼의 'Landings' 조각을 바디수트로 활용하는 '입을 수 있는 조각(wearable sculptures)' 작업이었다. 1973년 취리히로 돌아오면서 하이디 부허는 부부로서의 가치관 차이로 칼과 이혼하게 된다. 그녀는 부허라는 성은 유지하지만 예술가로서 독자적인 길을 걷기 위해 칼과 거리를 두게 된다. 취리히로 돌아온 다음 그녀는 오래된 정육점을 빌려 작업실로 사용한다. 그리고 작업실 중앙에 있던 냉동창고를 'Borg'라 이름하는데, 독일어로 'Ge-Borg-enheit'는 '안전'을 뜻한다고 한다. 누군가의 아내 혹은 엄마로서가 아닌 한 명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후 'Borg'는 1976년 그녀의 첫  '스키닝(skinnings)' 작업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Borg에서 작가는 '소프트 오브젝트' 작업을 시작한다. 앞치마, 스타킹, 속옷 등 여성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액상 라텍스에 담근 후 방부처리하여 부드러운 조각을 만들어냈다. 라텍스에 절여진 오브제들은 본래의 용도와 색조를 잃게 되며 마치 곤충의 허물과 같은 형상을 지니게 된다. 변태(metamorphosis)를 마친 그녀가 빠져나간 듯 허물어진 오브제들은 중성화되어 영원한 기념비로 남는다.

 

 

(오른쪽 두 개의 이미지) <Untitled>, 1971, Felt pen on paper, 30x21cm, 35x21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Bodyshells>, 1972, LACMA, Los Angeles ⓒ The Estate of Heidi Bucher.

 

<Bodyshells>, 2021, Haus der Kunst, Munich ⓒ The Estate of Heidi Bucher.

 

<Landings to wear>, 1970, New York with Carl Bucher ⓒ The Estate of Heidi Bucher.

 

Studio, Zurich, 1976 ⓒ The Estate of Heidi Bucher.

 

<Apron>, 1974, Textile, Latex, Paint, Mother-of-pearl pigment on foam, 150 x 119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Der Fisch Schl&auml;ft>, 1975, Textile, Latex, Paint, Mother-of-pearl pigments, 215 x 80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Anna Mannheimer with Target>, 1975, Textile, Latex, Paint, Mother-of-pearl pigments, 213 x 200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Blaues Kleidchen>, 1978, 90 x 64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Strumpfrock>, 1978, 96 x 43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Libellenlust,Dragonfly Costume>, 1976, Textile, Foam, Latex, Mother-of-pearl pigments, Exhibition view Hauser, Wirth & Schimmel L.A. 2016 ⓒ The Estate of Heidi Bucher.

 

Heidi Bucher performing in her Dragonfly Costume, 1976, Zurich, Photo by Thomas Burla ⓒ The Estate of Heidi Bucher.

 

 

3.

작가는 70년대 후반부터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업인 '스키닝(skinnings)'을 시작한다. 스키닝은 벽에 부레풀을 거즈와 함께 바르고 액상 라텍스를 덮어 말린 뒤 벗겨내는 기법이다.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서재, 정신 의학자 빈스방거의 진료실 등을 방문하여 그곳의 피부를 벗겨낸다. 그곳에 쌓여있던 억압적 이념과 차별적 관습의 때를 벗겨내는 것이다. 피부는 몸과 외부가 교류하는 1차적인 장소이다. 우리는 피부를 통해 사회를 감각하고 시대를 경험한다. 시간이 흐르고 삶이 지남에 따라 피부 위에는 겹겹의 지층이 쌓인다. 하이디 부허는 특정 장소의 피부를 벗겨내며 그곳에 쌓여온 시간과 역사를 벗겨낸다. 억압적 때가 벗겨진 공간은 중성화되며 작가는 그 피부를 전리품으로 챙긴다.

 

 

Abl&ouml;sen der Haut I - Herrenzimmer(아버지 서재), 1979, Photo by Hans Peter Siffert ⓒ The Estate of Heidi Bucher.

 

<Herrenzimmer>(아버지 서재), 1979, Textile, Latex, Mother-of-pearl pigments, Exhibition view Swiss Institute New York, 2014 ⓒ The Estate of Heidi Bucher.

 

<Der Parkettboden des Herrenzimmer> (아버지 서재), 1979, Exhibition view, Swiss Institut CCS, 2013, Paris ⓒ The Estate of Heidi Bucher.

 

<The Parlour Office of Doctor Binswanger> (빙스방거의 진료실), 1988, Textile and Latex, 500 x 500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Das kleine Glasportal mit 3 B&ouml;gen>, 1988, Textile and Latex, 340 x 455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Das kleine Glasportal mit 3 B&ouml;gen>, 1988, Textile and Latex, 340 x 455cm, Migrosmuseum, Zurich 2004 ⓒ The Estate of Heidi Bucher.

 

<Untitled>, 1991, December Postcard collage, 16.7 x 14.8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4.

말년에 이르러서 하이디 부허는 흘러넘치는 생명력과 끊임없는 변화의 상징으로 물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그녀는 생애를 가로지르며 물과 같이 흐르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보다 경쾌하게 흐르기 위해선 가벼워져야 하고, 가벼워지기 위해선 자신에게 무겁게 붙어 있는 무언가를 벗겨내야 한다. '생성을 위한 분리', '벗겨내고 벗어남'은 그녀가 가볍게 흐르기 위한 탈피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녀를 소개하는 글에는 항상 '아방가르드'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아방가르드의 수호자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는 "아방가르드의 가장 참되고도 가장 중요한 기능은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 혼란과 폭력의 한가운데에서도 문화를 계속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라 말한다.** 하이디 부허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당대의 억압적 이념과 폭력적 관습의 한 가운데에서 계속 흐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했다. 그녀는 흐르고자 했고 흐르면서 사회를 움직이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그 누구보다 전위적이다.

 

 

<Heute fliesst das Wasser aus dem Krug>, 1986 ⓒ The Estate of Heidi Bucher.

 

<Jetzt fliesst das Wasser aus der Vase>, 1987, Locarno ⓒ The Estate of Heidi Bucher.

 

<Krug auf Wasserbett>, 1987, Textile, Latex, Mother-of-pearl pigments, 31 x 39 x 10.5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Untitled>, 1985, Gouache on paper, 30 x 40 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Untitled>, 1985, Gouache on paper, 30 x 40 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Source Enchantee - Bezauberte Quelle>, 1986, Watercolor drawing with painted old postcard, 30 x 21cm ⓒ The Estate of Heidi Bucher.

 

 

 

 

 

 

 

(글의 내용과 사진의 출처는 하이디부허 재단 https://heidibucher.com/biography/.) 

* '가부장적 공간을 깨부수다...하이디 부허 회고전', 노컷뉴스, 2023.03.27일자 기사, https://www.nocutnews.co.kr/news/5916881

** 클레멘트 그린버그. ≪예술과 문화≫. 조주연 옮김(2004). 경성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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